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멕시코 혁명 (문단 편집) == 배경 ==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1860년대 [[프랑스 제2제국]]의 침략에 맞서 싸운 영웅 중 한 명[* 당시 프랑스는 [[멕시코 제2제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막시밀리아노 1세]]를 황제로 앉혔다.]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인 1876년부터 1911년까지를 '''포르피리아토'''(Porfiriato)라고 한다.[* 중간에 [[후안 네포무세노 멘데스]]가 두 달 동안 대통령직에 있었으나 존재감은 없었고 [[마누엘 곤살레스 플로레스]]가 1880~1884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디아스의 정책을 충실히 이어받아 실행했다.] 디아스 정권은 산업을 진흥하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도로, 댐, 철도와 같은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외관상으론 이런 외자 도입으로 인해 철도 부설이 진행되는 등 산업의 진흥과 경제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반면 빈부격차는 극도로 확대되었다. 디아스 정권은 근대적인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토지의 등기 제도를 추진했다. 하지만 멕시코의 원주민은 원래 토지 소유란 개념이 없었고 거의 모든 농민은 소유권이 확실하지 않은 마을 공동지에서 경작했다. 디아스는 '토지제도의 근대화'란 명목으로 이러한 소유권이 애매한 토지를 정부가 접수한 후 외국 자본과 대농장주에게 매각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멕시코 농민의 대다수가 토지를 잃고 '페옹'이라 불린 농업 노동자로 전락했다. 돈을 버는 것은 대장원을 소유한 '아센다도스'(hacendados)와 같은 부유층뿐이었고 [[프롤레타리아|도시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은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디아스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루랄레스'(Rurales)라고 하는 경찰 병력을 동원하거나 선거를 조작하는 등 독재 정치를 펼쳐나갔다. 토지를 되찾기 위한 원주민들의 싸움은 정부군 및 대농장주가 고용한 사병들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었다. 디아스의 폭정에 반대하던 마곤 형제[* [[아나키즘|아나코]]-[[공산주의|코뮤니스트]]인 [[https://en.wikipedia.org/wiki/Ricardo_Flores_Mag%C3%B3n|시프리아노 리카르도 플로레스 마곤]](Cipriano Ricardo Flores Magón), [[https://en.wikipedia.org/wiki/Enrique_Flores_Mag%C3%B3n|엔리케 플로레스 마곤]](Enrique Flores Magón), [[https://en.wikipedia.org/wiki/Jes%C3%BAs_Flores_Mag%C3%B3n|가스파르 헤수스 멜초르 플로레스 마곤]](Gaspar Jesús Melchor Flores Magón)을 가리키며 이들의 사상을 '''마곤주의'''(Magonismo)라고 부른다.]는 1900년 반-디아스 신문인 《갱생》(Regeneración)을 펴냈지만 탄압이 심해져서 1905년 미국으로 옮겨야 했다. 또 마곤 형제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디아스가 권력을 잡고 있던 자유당(Partido Liberal)에서 갈라져 1905년 [[멕시코 자유당]](Partido Liberal de México)을 조직했다. 노동자와 농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노동조합]]이 조직되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1906년 미국 자본 소유였던 멕시코 북부 카나네아(Cananea) 구리 광산에서 미국인과 멕시코인 사이의 임금 차별을 이유로 파업이 발발했는데 디아스를 뒤에 업은 사측의 강경 진압으로 4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항구도시 [[베라크루스(도시)|베라크루스]]에서는 군인들이 파업 중이던 노동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 시체를 바다에 던져 상어밥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고령에도 권력욕을 놓지 못한 디아스는 191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윌리엄 태프트]]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기까지 했다. 이 때 디아스의 대항마로 북부 지주 출신의 신흥 대농장주이자 청년 지식인이었던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등장했다. 마데로의 지지세는 34년째 지속된 디아스 정권에 질린 여론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에 디아스 정권은 마데로를 체포하여 투표일을 산루이스포토시 감옥에서 맞이하게 했다. 디아스는 자신이 압도적 득표로 재선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아무리 봐도 [[부정선거]]였다. 선거가 끝나자 석방된 마데로는 [[미국]] [[텍사스]]로 망명하여 10월 25일에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산루이스포토시 계획>'''(Plan de San Luis)을 발표하여 봉기를 호소했고 이에 따라 마데로의 지지자들이 북부 [[치와와(멕시코)|치와와]]에서 봉기를 일으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